선생님은 존경하되, 질문은 서슴없이 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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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교권은 무너진지 오래 되었다. 과거 선생님은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반면, 지금은 그야말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그야말로 내가 돈을 주고 지식을 제공받는 업자에 불과하게 전락하였다. 자기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다짜고짜 학교에 전화해서 욕설을 퍼붓는 일부...아니 이제는 일부가 아닌 대다수의 몰지각한 부모들을 보면 알수 있다. 그런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불보듯 뻔하다.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에대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배우는 사람의 바른 입장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지식도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즉, 학생은 교사를 존경해야 하고, 경외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교육행위가 이루어 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움의 현장이 일방통행이 될수는 없다. 사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적 교육문화는 일본에서 배워서 그런지 일방통행식이었다. 체벌이 합법적이었던 과거의 문화는 사실 지금까지도 선생이 말하면 입닫고 듣기만 하는 교육문화에서 계승되고 있다. 즉 선생님의 권위는 사라지고, 교육시의 교사와 제자간의 소통역시 부재한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스승인 랍비를 어떤 태도로 대할까? 유대인들 사이에서 랍비는 거의 최고수준의 지위를 가진다. 전통적인 유대 공회에서의 발언권은 랍비에게 주어진다. 즉 정치와도 관련된 공회에서 랍비는 스승 이상의 사회적 지도계층적 지위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랍비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다. 학생들은 랍비가 지나갈때 앉아 있을수 없고 반드시 일어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랍비는 그야말로 존경의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토론이나 논쟁을 벌일때는 별개이다. 즉 선생과 제자로서 토론의 장에서 만날때는 권위와 상관없이,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유대문화이다. 즉, 권위는 인정하지만 그 권위가 위압적이거나 일방향적인 수업형태의 교육이 아닌, 쌍방 엄청나게 소통하는 토론문화가 바로 유대인의 교육문화인 셈이다.
그들의 생각은 아무리 스승이라도, 절대적인 지식은 있을 수 없으므로, 틀릴수 있고 토론을 통해 더 좋은 대안이 나온다면 지위여부를 떠나 교정받고 틀린 생각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과의 차이점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이 질문하는것까지는 용인하지만, 아이가 어른과 동등한 입장에서 어른의 생각과 관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반박하는 것을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런 아이들을 '버릇없이 따지고 드는 말대답하는 아이'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대화의 분위기속에서 자연히 질문은 줄어들고, 점차 일방향적인 '좋은 말씀듣는' 혹은 '덕담이나 듣는' 식의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의 장이 형성된다.
윗사람에 대한 존경은 하되, 교육은 절대적으로 소통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전세대가 실패했다면, 우리 세대에서는 실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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