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첫번째 단계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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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로부터 폭풍질문을 받고 있다. 보이는 사물은 뭐든지 다 질문거리이다. 아직까지는 질문하는 아이가 대견해서 잘 대답해 주고 있긴 하지만, 주변에 엄마아빠들을 보면 이 상황이 지속될수록 점점 질문하는 아이에게 대충 대답을 해 주거나 심지어 귀찬아 지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무조건 질문에 대해서는 끝까지 대답을 잘 해주자는게 내 지론이다.
한국사람들은 유난히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질문을 하면 곧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흐지부지 잘 모르는것을 넘어가면, 얼마후 반드시 그 모르는 어떤것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 따라서, 잘 모때는 질문하고 모르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런 습관은 어릴때부터 들이는 것이 좋다. 어릴때 가정에서 아이가 질문을 하면 질문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기고 끊임없이 더 질문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귀찮다고 대충 넘어가서는 안된다.
사고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나름의 의문을 품는 것이다.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곧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삶을 살아갈수록 더 많은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지적인 성장은 이런 의문을 풀어감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참고 넘어간다고 누가 주지는 않는다. 결국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진보시키는 길잡이이자 지성의 출발이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납득할수 없으면 끝까지 질문한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한다. 누가보면, 정말 질릴정도로 집착하는 아이구나 할 정도이지만, 유대인 사회내에서는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설프기는 하지만 어렴풋이 이해가 되면 대충넘어가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비단 질문을 하는 나만 이런식이라면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태도로 납득이 갈때까지 질문을 해대기 때문에 토론은 길어지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 얻어가는 사고의 발전은 비약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유대인은 일찍부터 고등한 사고방식을 배우기 때문에 고등학교때 까지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계 올림피아드 에서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학생들이 상위권에 드는 경우는 없지만, 하바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입학생의 30퍼센트는 유대인의 몫이라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즉, 본격적인 배움이 시작되는 대학교때부터 유대인들은 무섭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어떤 학생들도 감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캠퍼스야말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해답을 얻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그들의 4년은 한국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보내는 4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결국 이 4년안에서 또다시 격차는 벌어지고 만다. 세계 각층의 학자, 사상가, 법률가, 언론인, 교육자 등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의 활동이 독보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평화상 제외)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든 노벨상을 하나 받아보자며, 정부에서 돈을 투자하고 있는데 이렇게 받은 노벨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릴때부터의 교육자체가 바뀌어야 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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