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2일 금요일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자] - 유대문화의 기본인 '하브루타(Havruta)'

아이와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자

<img source: www.bowdoin.edu>

한국의 문화는 사실 토론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한국식 교육이다' 라고 할때 그것은 '주입식 교육' 어른이 말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고, 토론또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서로 양보해 가며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이러한 유교적 사상이 깔려있는 한국의 교육자체는 국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세계로 나가 타국의 교육을 받은 외국인들과 객관적으로 경쟁하는 미국의 유수 대학들에 가보면 그 결과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국제 수학경시대회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거나,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한국 학생들을 막상 외국아이들과 함께 두고 토론을 시켜보면, 정말 한심할 정도로 말을 하지 못한다. 물론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토론을 천시하는 교육문화에 원인이 있다. 

사실 아는것도 별로 없고 시험을 쳐보면 월등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한국의 아이들이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 타인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대우를 못받는 것이다. 

예전에 미국에 잠시 인턴으로 모 회사에 취업해 있을때, 나와 동년배인 미국인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매 아침 회의때마다 느낀것은, "이 아이들은 정말 별로 아는건 없는데, 말은 정말 번지르르하게 하는구나" 였다. 반면 나는 아는건 많은데, 내 생각을 자유롭게 투척하지 못하게 하는 뭔가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가 내 속에 탑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난 20년간 내가 한국에서 받아온 교육이 내 속에 보이지 않는 틀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혹시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기분나빠 하지는 않을까?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다른사람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반면 당시 남미 출신의 어떤 친구는, 정말 말이 많았다. 그는 어떤 것이든 붙잡고 말을 이어 나갔는데, 내 느낌에 그는 시작할때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말을 마칠때 쯤이면, 뭔가 자기 자신도 결론을 얻고, 듣는 사람들도 그가 뭔가를 우리에게 공을 넘겼다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사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대화라고 하는 것은 뭔가 알고 있는것을 남에게 단순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말을 해 나가면서 스스로도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대화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고, 대화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사실 나 자신이 대화를 통하여 지식에 도달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것 같다. 또한 나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대화는 타인의 생각을 듣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얹다 보면 아주 훌륭한 결론에 도달되게 되거나, 내 생각이 간혹 잘못되었었구나 라는 깨달음마져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와 토론의 문화는 서양문화의 근본인 그리스 아고라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지만, 더 엄밀히 말하면 사실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유대인의 '하브루타'(Havruta-짝을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것')에 근원이 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교재인 토라, 탈무드를 공부할때 유대인들은 혼자서 책을 보기 보다, 오히려 여러명이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몸에 배여있다. 형태는 주로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형식이다. 

유대인들은 어릴때부터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엄마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주는 태교역시 유대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식탁에서 부모와 자녀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것, 자기전에 아이 배개맡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학급에서 교사가 질문하고 이에대해 토론하는 분위기, 심지어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도 탈무드를 가지고 거리낌없이 이야기 하는 문화,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하브루타' 문화이다. 

유대인들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누구를 만나든 쉽게 대화를 한다. 몸에 배여있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사실 완성된 책이라기 보다, 이런 토론의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쓰여지는 책이기도 하다. 

자신의 짝과 평생지기와 함께 회당에서 토론하고 논쟁하고 질문하고 대합하고 거기에 전문성이 더해지면서 점점더 지식은 쌓이게 된다. 사실 이렇게 얻은 지식은 자신의 것이되는 것이다. 책에서 얻어지는 지식은 사실 남의 것일수 있지만, 이렇게 토론을 통해 얻게되는 지식은 과정이 있는 내가 이해한 나만의 지식, 주관적인 지식이 되는 것이므로, 훨씬 더 유효할 뿐만 아니라, 다음에 내가 뭔가 주장을 펼칠때, 훨씬 더 강력한 나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어쨋든,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은 국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에서 활동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으므로(?) 반드시 서양의 아이들에 뒤쳐지게 놔둬선 안된다. 중요한건 많은 지식을 소유하였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소통할 줄 아느냐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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