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잡아주지말고 물고기잡는 법을 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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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적인 학습방법은 암기와 내용의 이해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텍스트를 통쨰로 외우면서 그 속에서 진리를 찾았다(논어맹자를 줄줄외고 과거시험을 보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이런 전통은 장학퀴즈나, 골든벨과 같은 프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모든 평가는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정답을 외우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내용에 대한 습득 능력은 한국이 세계에서 최고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의 경우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에게 텍스트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암기란 그저 하나의 도구일뿐, 목표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답이란 무수한 토론을 통해 점점더 깊게 다가가야할 대상이다. 따라서 정답을 알기보다 토론하는 방법을 갈고 닦는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아이들에게 고기를 잡아다 주면 아이들은 고기를 잘 보관한다고 한다면, 유대인의 교육방식은 고기를 잡아주는것이 아니라, 고기잘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습에 대한 평가, 즉 시험을 보면 한국학생들이 월등한 반면, 그것을 응용하거나 적용함에 있어서는 유대인이나 서방 국가의 학생들에게 한참 밀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느라 지치고, 자녀들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질문과 토론, 논쟁을 통한 공부,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얻어지는 창의적인 밝견이야 말로 유대인 교육의 본질이요, 유대인의 저력의 비밀이다.
유대인에게는 이런 격언이 있다.
"만일 천사가 나타나 토라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고 해도 나는 거절하겠다. 배우는 과정은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떄문이다."
한국에 이런 천사가 나타난다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가르쳐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것을 단호히 거절한다. 즉, 배움의 결과물보다 배움의 과정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다. 사실 지식자체는 한정적이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택하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무한정 늘어나는 셈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질문은 모르는 것이 생길때 힌트를 얻기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내용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질문은 있을 수 없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질문은 내용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고, 더 나은 내용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제시된 내용은 한정적일 지라도 얻을 수 있는 내용은 무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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