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3일 일요일

유대인식 논리력 - 사고범위를 무한대로 열어놓다



<img source: www.haeunchurch.com>

하버드대에서 소크라테스 문답법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젊은이가 탈무드를 공부하고자 한 랍비를 찾았다. 랍비는 제자를 받기전에 그의 논리력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도둑 두사람이 굴뚝을 통해 어느 집에 침입했다네, 그런데 한 도둑의 얼굴을 깨끗한데 다른 도둑의 얼굴은 더러웠지,둘 중 누가 얼굴을 씻었겠는가?"

 젊은이는 당연히 얼굴이 더러운 도둑이었겠지요 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랍비는 틀렸다고 답했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이 씻으러 갔다네, 간단한 논리지. 자, 얼굴이 더러워진 도둑은 얼굴이 꺠끗한 도둑을 보고서 자기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얼굴이 깨끗한 두둑은 얼굴이 더러운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도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얼굴을 씻지 않겠나?

젊은이는 랍비에게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랍비는 이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얼굴이 깨끗한 도둑이 얼굴을 씻겠지요"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랍비는 틀렸다고 했다.

"둘다 씻으러 갔다네, 역시 간단한 논리이지. 더러운 얼굴을 한 도둑이 꺠끗한 얼굴을 한 도둑을 보고서 자신도 꺠끗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깨끗한 얼굴을 한 도둑은 더러운 얼굴을 한 두둑을 보고서 자신도 더러울 거라고 생각했네. 그 결과 꺠끗한 얼굴을 한 도둑이 씻으러 갔겠지. 더러운 얼굴을 한 도둑은 깨끗한 얼굴을 한 도둑이 씻는 것을 보고 있다가 그 또한 얼굴을 씼었겠지."

젊은이는 랍비에게 생각지 못한바라고 하고, 또다른 문제를 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랍비는 또 같은 문제를 냈다. 그러자 젊은이는, "둘다 씻었겠죠" 라고 대답했고, 랍비는 또 틀렸다고 말했다.

"아무도 씻지 않았네, 이것역시 아주 간단한 논리지.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얼굴이 깨끗한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도 깨끗하다고 생각했었네. 얼굴이 꺠끗한 도둑은 얼굴이 더러운 도둑을 보고 자기 얼굴이 더러운 줄 알았지. 얼굴이 더러운 도둑은 자기 얼굴이 깨끗한 줄 알고 안 닦았다네. 얼굴이 꺠끗한 도둑은 그것을 보고 '저 친구도 안 닦는데 나만 닦을 필요는 없지' 라고 역시 닦지 않았겠지. 결국은 둘다 닦지 않았겠지"

사색이 되어버린 젊은이는 그래도 자신은 탈무드를 공부하고 싶다면서 다른 문제를 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랍비는 이번에도 똑같은 문제를 냈다. 그리고 젊은이는 왠지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했고 또 틀렸다는 대답을 들었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공부했다고 들었는데, 왜 자네에게 탈무드 공부가 불가능한지 알겠는가? 설명해 보게. 두 도둑이 똑같은 굴뚝을 통해 들어갔는데 어떻게 한 사람은 더럽고 한 사람은 꺠끗할 수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공부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이 예화에서 중요한 것은 랍비가 한 말들이 논리적인가 아닌가를 떠나, 랍비의 사고의 범위이다. 랍비는 결론적으로 네가지 답을 내렸다. 

1) 얼굴이 깨끗한 도둑이 얼굴을 씻을 것이다.
2) 얼굴이 더러운 도둑이 얼굴을 씼을 것이다.
3) 두 도둑모두 얼굴을 씼을 것이다.
4) 두 도둑모두 얼굴을 씼지 않을 것이다. 
5) 같은 굴뚝으로 들어갔다면 두도둑 얼굴 모두가 더러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탈무드라네" 라는 말로 젊은이의 입을 완전히 막아버린 랍비의 마지막 말에서 볼 수 있듯이, 탈무드에서는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다른답에 대한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는다. 유대인은 가르침, 권위, 통념, 관습 등을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사고 범위를 무한대로 열어놓고 따져 묻는다. 

"과연 옳은 생각인가?"
"다르게 바라볼 수는 없는가?"
"더 좋은 방향은 없는가?"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달리 생각할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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